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 (문단 편집) == 기타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michael+jackson+art.jpg]] * [[음악]]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그림]] 실력 역시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앨범 내 소책자를 보면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도 수록하기도 했다. 내한 당시에 머물렀던 숙소 선반에도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사인을 새겨두고 갔다. 호텔에서는 기념으로 그대로 둔 모양이다. 여러모로 예술적인 면에서는 천재. *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마이클 잭슨의 음악 저작권 가치는 3억 7500만 달러로, 1위인 [[존 레논]]-[[폴 매카트니]] [[레논-매카트니|듀오]](5억 달러)에 이어 2위로 [[https://www.forbes.com/sites/arielshapiro/2021/06/07/rights-to-rodgers-hammerstein-worth-staggering-sum-more-than-bob-dylan-or-paul-simon-beatles-michael-jackson/|조사]]되었다. 포브스는 순수 잭슨 본인의 음악만으로 1년에 약 2000만 달러의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화 <[[스윙키즈]]>의 강형철 감독에 [[https://www.msn.com/ko-kr/entertainment/story/총-대신-춤으로-싸우는-청춘들-통해-반전-메시지-담아/ar-BBQvZ9e|의하면]] 한국영화에서 사용할 엄두도 못 내는 3대 가수가 마이클 잭슨, [[퀸(밴드)|퀸]], [[비틀즈]]라고 한다. 곡 사용료도 워낙 비싼데다 원곡 삽입을 허락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http://t.m.china.org.cn/convert/c_ks18Q8rM.html|일례]]로 중국영화 감독은 영화에 'Heal The World'를 삽입하기 위해 사용료로 10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 마이클의 대표적인 수식어인 'King of Pop'은 사실 미국 [[특허청]]에 [[상표권]]으로 공식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0997282?sid=104|등록]]된 별명이기도 하다. 2009년 마이클이 사망한 직후에 바로 상표권 출원이 있었는데 'King of Pop'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누가봐도 마이클을 떠올려 혼동이 없을 것, 본인도 'King of Pop'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며 반대하는 다른 뮤지션들이 없을 것 등의 심사요건들을 모두 충족시켜 2014년 공식 등록됐다. * 음악적 재능은 마이클 본인의 열정으로부터 발휘던 것뿐만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이어진 핏줄과도 다름없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아버지인 조셉 잭슨은 어머니 캐서린과 결혼하기 전에 팔콘(Falcon)이라는 음악 밴드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는 공연을 한 경력이 있었다. 9명의 아이들이 있었던 잭슨 가에서, 마이클은 다르게 생각하고 그 당시 아프로 미국인(Afro-American)이 이끌었던 것에 반항하는 삶을 원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https://www.celebrityfunfacts.com/michael-jackson/f90o76/|관련 출처]] * 2009년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784734/Moon-crater-named-after-Michael-Jackson.html|Lunar Republic Society]]는 13.5 마일 크기의 한 달 분화구에 마이클의 이름을 따 '마이클 조셉 잭슨'으로 명명했다. * [[1972년]]에 첫 번째이자 유일한 골든 글로브를 수상하였다. [[1972년]] 발매된 2번째 솔로앨범 《[[마이클 잭슨/음반 목록#s-2.1.2|Ben]]》과 이름이 동일한 제목의 공포영화에 솔로곡 'Ben'이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https://www.thenational.ae/arts-culture/music/60-things-you-may-not-have-known-about-michael-jackson-1.764661|관련 글]] * 2009년 미국 의회에서 마이클을 '아메리칸 레전드'로 추대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기에 추대되면 마이클은 미국의 역사, 세계사 및 사회 교과서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며 이는 대중문화인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 그리고 흑인으로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이어 두 번째의 사례가 될 수도 있었다. 공화당의 실라 의원이 실제 법안까지 발의했고 이에 클린턴 부부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전반적인 환영 분위기와는 달리 공화당에서 반대가 심해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각종 루머로 인해 추락했던 이미지였다. 공화당의 피터 킹 의원은 "마이클 잭슨은 살아있는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고 아동성추행을 일삼은 페도필리아"라며 유튜브에 영상까지 올려 반대의 뜻을 밝힐 정도였다.[* 마이클 잭슨이 무죄를 받았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주장을 펼친 것은 당시 미국의 사회가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얼마나 편협한 방식으로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다.] * [[카리브 해]]의 한 섬이 마이클 잭슨 우표를 만든 적이 있다. [[https://www.luckyvoicekaraoke.com/blog/25-rare-facts-about-michael-jackson-you-didnt-know/|출처]]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그의 유작이다. * 사후에도 팬덤이 늘어나는 가수 중 하나. 페이스 북 팬 페이지 좋아요 수는 7500만개가 넘었고 유튜브 통계에서도 현재까지도 인기가 아주 많다. 보통 유튜브 조회수는 마이클 잭슨과 같이 전성기가 오래전에 끝난 가수들은 매우 적은 편인데 마이클 잭슨은 2022년 현재에도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웬만한 급의 팝가수들과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유튜브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은 가수들 중에 40위권 이상에는 항상 들고 있다. 물론 워낙에 옛날 가수다 보니 공식채널에 나와있는 MV들은 조회수가 최신 팝가수들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유튜브의 규모가 커지며 옛날 가수들의 조회수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마이클 잭슨도 그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2022년 1월 13일 기준 [[Billie Jean]] 의 공식 MV 조회수가 11억을 넘겼고,그 뒤로 8억 조회수 뮤비가 2개, 7억, 6억이 1개, 그 외에 1억뷰 이상의 뮤비를 다수 보유하며 웬만한 현역 가수 못지않은 조회수를 갖고 있다.] * 클럽에 자주 큰 관심을 가졌다. 잭슨은 전설적인 뉴욕시 클럽 스튜디오 54에 자주 들렀는데, 그곳에서 그는 곧 있을 힙합 운동의 초기 전조였던 비트 복싱에 노출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그의 미래의 많은 노래에 보컬 기술을 접목시켰다. [[https://www.thenational.ae/arts-culture/music/60-things-you-may-not-have-known-about-michael-jackson-1.764661|관련 글]] * 생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마이클의 전 경호원 매트 피데스(Matt Fiddes)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야심만만했고 절대 그 야심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이자 갖지 못했던 것은 여왕으로부터의 인정이었다. 그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좋은 친구였고 그것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인데, 왜 나만 마이클 잭슨 경이라는 기사 작위를 못 받은 거야?'라고 말했다. 영국인이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조차 기사 작위를 받은 사례가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그냥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첨언하자면,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영연방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 외국의 시민들에게 [[기사(역사)|기사]] 작위같은 [[귀족]] 작위를 수여하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받은 [[대영제국 훈장]] 2등급은 영연방 입헌군주국 시민이었으면 기사 작위급 훈장으로 간주되었을 테지만, 스필버그는 [[미국인]]이니 작위가 딸려나오지 않는 명예 훈장으로만 간주된다. 마이클 잭슨은 이런 사정을 몰랐던 모양이다.]. [[https://www.mirror.co.uk/3am/celebrity-news/michael-jackson-couldnt-understand-queen-6565226|관련 기사]] * [[동물]]도 매우 좋아했는데 어머니 캐서린 잭슨의 자서전에는 저녁 식사 중 마이클이 [[빵]] 부스러기를 집어 셔츠 주머니에 넣었는데 뭐하냐고 묻자 [[쥐]]가 마이클의 셔츠에서 얼굴을 내밀었다고. 그런데 그는 살인 쥐가 마을을 조지는 'BEN' 의 주제가를 불렀다 그래도 본인은 쥐가 관련됐다고 좋아했던 듯. 그리고 [[침팬지]] 버블스를 상당히 좋아했는데 [[1983년]]부터 그를 키운 뒤로 [[뮤직비디오]], 쇼 프로그램 등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찌라시 언론들은 마이클이 버블스에게 집안 청소를 시킨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등의 루머를 뱉어냈고 아이들에게 위험할 정도로 덩치가 커져 결국 헤어졌다. 버블스 외의 반려동물로 는 Mr. Tibbs라고 불리는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램과]] 크루셔라는 이름의 반려 비단뱀을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키웠다]]. * 다만 [[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개 물림 사고를 당했던 아이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자녀들이 개를 너무 좋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리트리버 강아지를 데려와 키웠다. 이름은 케냐이며 형제들이 각자 독립한 후에는 장남인 프린스가 [[https://www.instagram.com/p/B40Ph6fAgpY/|키워 오다가]] 현지 시각으로 2020년 10월 26일 [[https://www.instagram.com/p/CG2aJh0AfMC/?igshid=cwbprzmu07lh|사망했다.]] * 생소할 수도 있지만, 수잔 드 파스(Suzanne de Passe)라는 미국의 여성 사업가는 마이클의 예술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잭슨 파이브]]가 모타운에 합류한 후 그들의 멘토 겸 스타일리스트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훗날 마이클의 [[마이클 잭슨/음반 목록|솔로 활동]]으로 확대되었다. 수잔은 또한 마이클이 [[1983년]]의 상징적인 춤인 [[문워크]]를 연습하는 것을 본 첫 번째 사람이었다고 한다. [[https://www.thenational.ae/arts-culture/music/60-things-you-may-not-have-known-about-michael-jackson-1.764661|관련 글]] * 무대 위에서의 돌발 상황 대처와 순발력이 무척 좋았다. [[1996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내한 콘서트 2차 공연 도중 잭슨이 무대 중앙 9m 높이의 리프트에 올려진 순간 국내관객 김 모 군(당시 19)이 갑자기 관람석에서 리프트 계단을 타고 올라가 잭슨을 껴안는 해프닝이 일어났었다. 잭슨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침착하게 공연을 계속했고 관객들은 그게 무대 연출의 일부인 줄 알고 열광했다. 이 일로 경호상의 책임을 놓고 대한경호협회와 콘서트를 진행한 백호 기획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실랑이를 벌였으나 정작 잭슨은 '우리도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였다' 며 김 모 군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면 갑자기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잭슨이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김 모 군이 리프트에서 떨어지지 않게 꼭 붙잡은 채로 노래를 한다.[* 리프트로 공중 높이 떠서 관객석 위를 지나가며 노래를 하는 퍼포먼스인데, 잭슨은 안전바 안에 들어가 있어서 안전했으나 관객은 그 밖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할 수 있었다. 초반에 보면 팔을 잡아서 안전바를 잡게 해주려고 하지만 관객이 흥분해서 날뛰자 잭슨이 직접 꽉 잡아주는 것을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As-1cdNMePU|해프닝 영상. 4분 5초 부터]]. 이 김모 군은 현재까지도 Korean brave guy, crazy guy 등의 별명으로 해외에서까지 회자되고 있다. * [[1996년]] 내한 콘서트로 마이클 잭슨은 18억 원을 벌어갔는데, 여기에 과세 추징을 하느냐 마느냐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10646_19466.html|국내뉴스 링크]] 다만 이 18억 원도 꽤 깎은 개런티다. * 그가 [[약(동음이의어)#s-2|약]]을 했다는 몇몇 가지 증거들 중 하나로 최근 공개된 마이클 잭슨의 절친 중 하나인 마술사 [[유리 겔라]]에 대한 다큐에서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약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유리 겔라 문서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은 이미 [[흑역사]]가 되어버린 [[사기꾼]]이다.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자기 쇼의 성공을 위해 잭슨과 친구인 척 이름을 팔고 다녔다가 사기인 게 들통이 나고 잭슨의 뒤통수를 골라 치는 거짓말만 치고 다녀서 크게 비난받은 적이 있었다. 잭슨에게 약을 하지 말라고 본인이 얘기했다던데 이 사람은 관심이 떨어질 법하면 매번 잭슨이 약물을 했다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녀서 욕을 먹었다. * [[Dangerous]] 월드 투어 때 남미에서 갑작스레 투어를 중단할 수 없었던 이유로 [[진통제]] 과다 복용이라고 하고 있으며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HIStory]] 월드 투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25곡 정도의 트랙의 1회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진통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면서 탈진해서 취소됐다는 문헌이 있는데 겉보기와는 달리 잭슨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에는 루푸스 합병증으로 구강 내부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80년대 중반에 화상 사고를 당한 후 치료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두피를 팽창시키는 방식으로 상처를 막았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이 오랫동안 장발을 고수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수술의 후유증이 꽤 심각했는지 90년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진통제를 복용했다고 하며 93년 성추행 사건 이후로 불면증이 극심해져 약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한때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잭슨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는 팬들은 사이트에서 무조건 강퇴를 당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잭슨의 건강 문제는 언급이 금기시되어 있었다. * [[라스베이거스]]의 부흥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성폭행 혐의를 벗은 마이클은 [[라스베이거스]] 부활을 위한 두 가지 계획을 놓고 고심했다. 첫 번째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 조명이 돋보이는 콘서트 시리즈였다. 두 번째는 그의 사망으로 인해 그 어느 누구도 알 방법이 없다. [[https://hermoments.com/michael-jackson-facts/|관련 출처]] * 한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기도 했다. 70년대까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양복을 입고 집집마다 가스펠을 전파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하는데 1982년 'Thriller' 뮤직비디오 촬영 과정에서 여호와의 증인 내부에서 마찰이 심해서 탈퇴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Thriller' 뮤직비디오 시작 전에 '이 영상은 오컬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자신(아마도 마이클)의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다' 는 자막이 나온다.] 내한 공연 당시에 개신교 단체에서 깽판을 저질렀던 가장 큰 명분. 다만 잭슨 가 사람들 전부가 여호와의 증인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잭슨의 9남매들은 전부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다. 어떤 개신교 교회에서는 팝을 악마의 음악으로 싸잡아 말하면서 마이클 잭슨을 '마이클이라는 이름은 천사장 '''[[미카엘]]을 사칭'''한 것이다' 고 말하는 짓도 저질렀다. 마이클 잭슨 본인은 집안 영향 때문에 신도였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종교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종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신의 축복을' 이라는 말과 기도하는 손 모양을 자주 하고 '[[Dangerous]]' 앨범의 'Dangerous' 와 'Heal the world'[* [[http://blog.naver.com/ttiikim1236/25842796|Dangerous 가사 및 해석]], [[http://blog.naver.com/ttiikim1236/26779807|Heal the world 가사 및 해석]].] 에서 성경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여호와의 증인 탈퇴 이후에도 자신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가 스스로 밝혔다(2005년(?)의 인터뷰에서). * [[엑서터 시티 FC]]의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팬이며]] 명예 감독이었다. 한때 [[엑서터 시티 FC]]의 공동회장 우리 겔러(Uri Geller)와 함께 절친이었던 마이클은 축구 클럽의 후원자였다. 겔러가 잭슨을 데본으로 초청해 경기 전 연설을 하면서 클럽의 인지도를 높이고 자선기금도 모금하면서 시작됐다. 모금된 돈의 절반은 에이즈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는데, 이것은 마이클이 종종 캠페인을 벌였던 계기가 되었다. 몇 달 후, 마이클은 엑서터 시티의 명예 감독이 되었고, 엑서터 시티는 엑서터 시티에 무료 입장권과 클럽 내 주요 결정에 대한 투표권을 부여했다. [[https://www.eightieskids.com/10-things-you-didnt-know-about-michael-jackson/|관련 글]] * 생전에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를 좋아했었고 감독과도 친분이 있었다. [[1978년]]에는 [[시드니 루멧]]이 연출하고, [[퀸시 존스]]가 음악 감독을 맡은 '[[오즈의 마법사]] 뉴욕, 흑인 버전'인 뮤지컬 영화 《위즈 The Wiz》에서 [[다이애나 로스]]와 출연해서 허수아비 역할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흥행과 비평 면에서 동시에 실패하면서 흑역사로 남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는지 비록 'Bad' 앨범 홍보 차원에서 쓰이긴 했지만 [[1988년]]에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문워커]]에서도 주연을 맡아서 연기하기도 했다. 훗날 이 영화는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지만 실제로 영화가 제작 단계에 있었는지는 확인 불가. 그 이후로 [[맨 인 블랙 2]]에 요원 M으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작중 주인공의 상관에게 자신을 승진시키겠다는 약속을 안 지키냐고 묻는 순간 상관에게 그대로 무시당하는 역할로 나온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바보 삼총사》였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출처]] * [[아이보리 코스트]]의 [[가봉]] 주민들은 마이클 잭슨에게 왕명을 주었는데, 이것은 마이클이 가봉이란 마을 한정하에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https://www.luckyvoicekaraoke.com/blog/25-rare-facts-about-michael-jackson-you-didnt-know/|관련 글]] * [[찰리 채플린]]의 팬이었다.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채플린이 작곡한 'Smile'이었으며 일상을 찍은 다큐멘터리에서도 가족과 걸어가며 Smile을 흥얼거리는 모습이 찍힌 적이 있다. 그 유명한 [[Dangerous]] 퍼포먼스에서 후반부 [[골프]]를 치는 춤동작도 찰리 채플린에 대한 [[오마쥬]]. * 가장 사랑스러워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하나는 [[피노키오]]다. [[https://www.luckyvoicekaraoke.com/blog/25-rare-facts-about-michael-jackson-you-didnt-know/|출처]] * 2001년 리마스터링 버전이 나오기 전에 발매되었던 국내판 오리지널 '[[Bad]]' 앨범에서 강제 개명당했다. Michael Jackson을 '''Michael Jacksoon'''이라고 적어두었던 것. 다만 이것은 잭슨 본인도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내한 당시 레코드점에서 이것을 구입했다고 한다. *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잭슨은 [[애니메이션]]과 [[로봇]] 완구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700만 불이 들어간 'Scream' 뮤직비디오 초반부에 [[일본]] 애니메이션 [[AKIRA|아키라]], 바벨 2세, 그리고 [[붉은 광탄 질리온]]의 장면을 삽입할 정도로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많은 애착을 가졌다. 일본 공연 때 [[백화점]] 하나를 '''빌려서''' 장난감, 로봇 완구들을 산더미 같이 쇼핑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때 산 장난감 중에 [[백수왕 고라이온]]도 포함돼 있었다고. * [[KFC]] 치킨을 굉장히 좋아했다. 농구선수 [[매직 존슨]]이 마이클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마이클의 요리사가 매직 존슨의 앞에는 직접 요리한 구운 닭 요리를 내주더니 마이클의 앞에는 KFC 버켓을 주고 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마이클이 정크 푸드의 대표급인 KFC 치킨을 즐겨먹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 평소에는 유기농 음식을 고집했지만 KFC 치킨을 먹을 때는 "껍질을 벗겨내고 먹으면 유기농이야"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원래는 소식주의자면서 채식주의자였으나 건강이 염려된다는 주치의에게서 닭가슴살 요리를 먹을 것을 처방받았고, 이후 KFC를 먹어보고 아침 점심 저녁 매 식단에 KFC를 넣어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투어를 다닐 때 KFC 치킨을 구하기 힘들 것을 대비해서 요리사가 레시피를 준비해서 다닐 정도였으며 마이클을 보기 위해 숙소 근처 KFC에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후술하는 승객 프로필에는 매 끼마다 KFC 오리지널 치킨을 먹었고 '여러 날 동안 여행한다면 다른 치킨을 시도해 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KFC일 것이다'라고 서술될 정도였다. * 이 소식주의자적인 면 때문에 명성에 비해 먹는 사진이나 영상 기록이 굉장히 희귀하다. 그나마 많은 기록은 콘서트 전에 뜨거운 물에 녹인 리콜라 사탕을 마셨다는 증언이나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출처]] [[https://m.dcinside.com/board/jackson/65970|유심히 사탕을 골라 먹는 모습 등]] 대부분이 군것질이다. [[https://m.dcinside.com/board/jackson/64721|승객 프로필]]에 따르면 초콜릿, 땅콩버터, 브로콜리와 같은 향이 강한 음식은 선호하지 않았고 젤리와 껌, 민트나 과일을 즐겨 먹었으며 알려진 것과 달리 종종 음주를 하기도 했던 듯하다. 영상 기록은 초밥을 먹는 [[https://youtu.be/_9NKgSgGfeM|영상]] 정도가 남아 있다. * 테이크아웃 음식들 중 제일 좋아한 것이 멕시코 음식들이었다고 한다. 특히 부리토와 타코를 좋아했다고. [[https://www.luckyvoicekaraoke.com/blog/25-rare-facts-about-michael-jackson-you-didnt-know/|관련 출처]] * 노래에 유독 [[여자]] [[이름]]이 많이 나온다. '[[Billie Jean]]' 의 빌리 진, 'Dirty Diana' 의 [[다이애나]], 'Smooth Criminal' 의 [[애니]][* 가사에 나오는 'Annie, are you okay?'는 심폐소생술(CPR) 교육 때 교육용 인형 '애니'에게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마이클은 CPR 라이선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ittle Susie' 와 'Blood on the dance floor' 에 나오는 [[수지]], 거의 [[애드리브]]처럼 쓰는 데비 등등. 일각에서는 사귀던 여자들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는데 본인은 별 뜻 없다고 해명했다. 그저 이 노래에 이름이 거론된 여자들은 좋아했다. * [[일본]]과도 인연이 깊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초밥]]이었다고 말한적도 있으며 가장 큰 대중음악 시장 중 하나인 만큼 현지에서 공연도 매우 많이 했다. [[2006년]]에는 오랜만에 일본을 찾아 [[빅 카메라]]를 전세 내서 쇼핑을 하고 [[코무로 테츠야]] 같은 음악인들과 만나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인 [[후지테레비]] 「SMAPXSMAP」에 '''게스트로 깜짝 출연'''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LrA1_tMdIQ|#]] 'Beat It' 을 BGM으로 깔고 등장하는 폭풍 간지를 보여줬는데 [[SMAP]] 멤버들에게 전부 비밀로 하고 왔던 거라서 멤버 전원이 보고도 믿기지 않은 듯 다들 얼떨떨한 얼굴로 게스트 근처에 가까이 가서 앉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계속 진짜 마이클 잭슨이 맞냐고 물어봤다. [[롯폰기]]에서 흉내 내는 [[짝퉁]][* 짝퉁(?)은 아니지만 실제로 [[https://ameblo.jp/mycoolgood|마이코 료(マイコーりょう)]]라는 예명으로 마이클 잭슨 성대모사 및 퍼포먼스를 [[네타]]삼아 활동하는 [[게닌|예능인]]이 존재하기는 한다.]이 온 거 아니냐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곧 그런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어안이 벙벙한 채 마이클을 영접하였다. 자신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이나가키 고로]]에게도 즐거운 듯이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잭슨은 여기서 30분 출연하고 20만 달러를 받아갔다고 한다. 역대 게스트 중 가장 최단 시간 출연에 가장 많은 돈을 받아갔다고. 그리고 이것이 잭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 [[존 레논]]과의 인연은 없었지만, 아내 [[오노 요코]]와 그녀의 아들 [[션 레논]]과 친구 사이로 지낸 적이 있었다. 션은 영화 《[[문워커]]》에 같이 출연해 [[Smooth Criminal]]'의 뮤직비디오와 자선 노래 'We are the World'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또한 존 레논의 첫 부인 신시아가 낳은 존의 아들인 줄리안 레논과 좋은 친구였다. [[https://www.quora.com/Did-Michael-Jackson-ever-meet-John-Lennon#:~:text=Michael%20Jackson%20never%20met%20John%20Lennon%20but%20he%20was%20friends,by%20his%20first%20wife%20Cynthia.|출처]] * [[폴 매카트니]]에 이어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과의 인연도 있었다. [[1979년]] BBC 라디오 1에 들어가 90분 동안 외국인, 니컬렛 라슨, 블루스 브라더스의 싱글곡과 그들 자신의 노래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 토론했다.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47160940|관련 기사]] * [[1992년]] [[루마니아]] 공연 당시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 발코니에서 자신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에게 'hello, budapest!' 라고 인사하는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다. 헝가리하고 루마니아는 이웃나라고 도시 이름도 비슷하다 보니 저지른 실수인 듯[* '부쿠레슈티의' 영어 이름은 Bucharest, 발음하면 '부카레스트'이다. 부다페스트의 발음이랑 비슷해서 햇갈릴 수 있다. ]. 사실 두 나라의 국민감정으로 보건데 상당한 실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실수였지만 크게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갔다. * [[잭슨 파이브]] 초기 앨범들에 실린 자신의 목소리를 "미니 마우스 같다”고 표현했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출처]] * 세상을 떠난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와 생전에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그리고 직접 방송에서 나와 예전에 전화 통화도 많이 주고받았었다고 한다. 마이클은 바바라 월터스 쇼 인터뷰에서 다이애나와의 관계를 언급했는데 '''"그분은 너무나 아름다우시고 상냥하신 분이었어요. 우리 둘다 공통점이 많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할 만한 요소들이 수두룩하다. 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또 아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으려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담으로 마이클은 영국에서 BAD 투어를 하러 왔을 때 자신의 [[Bad]]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Dirty Diana'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모욕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어서 리스트에서 빼려고 했지만 정작 놀랍게도 다이애나는 오히려 'Dirty Diana'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직접 마이클에게 말해서 다시 리스트에 넣었다.[* 정확히는 당시에는 시간이 공연 직전이었어서 촉박해서 넣지는 못하고 다음 공연 때 추가했다] * 《[[Thriller]]》 앨범 활동 당시([[1983년]]) 인터뷰했던 기자 실비 시먼스(Sylvie Simmons)의 말에 따르면; "마이클은 아주 작고 세상 물정에 밝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그가 어린아이 같고 천사 같다고 묘사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몹시 수줍어하고, 손과 신발, 여동생을 쳐다보며, 주변에 면접관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닌다."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09/jun/28/michael-jackson-interview|관련 인터뷰]] * [[간지럼]]을 많이 탄다. * 사람들로 가득 찬 슈퍼마켓에 가서 평범하게 쇼핑해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분이 어디 나타나면 그 일대가 어떻게 되는지 말 안 해도 뻔한 노릇.[* 직접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백화점을 하루 통째로 빌려서 혼자 쇼핑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트를 운영하는 친구가 폐점 후 마이클 만을 위해서 비공개로 마트를 열고, 다른 지인들도 와서 마이클을 전혀 모르는 척하는 직원과 손님을 연기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0Wgpk5TA4|유튜브에서 그가 평범한 손님이 되어 장보기 체험하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무려 30년 만에 슈퍼마켓에 와본 것이라고 하며, 어린아이처럼 신나하는 마이클을 볼 수 있다. * 유명한 만큼 오고 간 매물도 많고 경력에 비해 발매된 앨범도 적은 편인데다 재판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수집하기 쉬운 유명인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가장 상징적인 의상 조각과 [[Thriller]] 뮤직 비디오 재킷이 [[2011년]] 경매에서 180만 달러에 팔렸고 그의 상징적인 검은색 '[[Bad]]' 재킷은 그의 첫 솔로 투어에서 29만 8천 달러에 팔렸다. [[https://ohfact.com/michael-jackson-facts/|출처]] * [[2010년]] [[1월 30일]] KBS에서 방송된 [[연예가중계]]의 한 코너에서 할리우드 추남 추녀 TOP 7을 소개하면서 마이클 잭슨을 성형중독자, 아동성폭행인 것처럼 설명해 시청자들한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며칠 뒤 남성 진행자의 멘션으로 짤막하게 사과했는데 이것이 과연 진정한 사과였는지 의문스럽단 의견이 많다. * [[2002년]] [[11월]], 수백 명의 팬들 앞에서 베를린의 4층 발코니 앞에서 막내아들 프린스 마이클 2세를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 언론의 비난들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순간의 흥분 속에 사로잡혔다. 나는 결코 의도적으로 내 아이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식 사과했다. [[https://ohfact.com/michael-jackson-facts/|출처]] * 독서광으로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책은 《립 반 윙클》과 《[[노인과 바다]]》였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출처]] *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국가(国歌)인 'South Carolina on My Mind'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글]] * [[1984년]] 한 프랑스 팬이 잭슨과 닮은 외모 수술을 받지 못해 자살한 전례가 있었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출처]] * 니콜 리치의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대부이며]] Bee Gees 멤버 배리 깁의 아들 마이클의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대부였다.]] * 리처드 아텐버러 경과 여배우 레베카 드모네이와 생일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출처]] *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서전 《문워크》는 완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출처]] 문워크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목록의 맨 위에 올랐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출처]] * 대중문화 예술가 제프 쿤스는 잭슨과 애완동물 버블즈의 조각품 시리즈를 만들었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관련 글]] * [[스탠 리]]에 의하면 90년대 후반에 한때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려고 했다고 한다. 당시 스탠 리는 마이클이 [[스파이더맨]]의 역할을 맡고 싶어서 그랬다고 추측했다고 한다. 주변인물인 프랭크 카시오의 자서전에 의하면 마이클은 마블을 그저 좋은 돈벌이용 사업으로 생각했다고. 가장 좋아하는 슈퍼히어로는 엑스맨의 모프였다. [[https://www.telegraph.co.uk/culture/music/michael-jackson/5649814/Michael-Jackson-100-facts-about-the-king-of-pop.html|출처]] *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HIStory]] 활동 중에 [[펄프(밴드)]]의 보컬 자비스 코커가 [[1996년]] BRIT Awards에서 마이클이 'Earth Song'을 공연하는 도중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 관객석을 향해 무대를 조롱하는 제스처를 취했던 전례가 있었다. 당연히 마이클 측은 코커에게 엄청 화난 상태였다. [[https://www.radiox.co.uk/features/x-plained/why-jarvis-cocker-mooned-michael-jackson-brits/|출처]] 이후 10여년간 별 언급이 없다가, [[2009년]] [[6월 25일]] 마이클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침묵을 깨고 '비극적이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https://www.independent.co.uk/news/people/news/jarvis-cocker-breaks-his-silence-over-michael-jacksons-death-1730407.html|관련 기사]] [[파일:팝의황제랑미국황제.jpg]] * 의외로 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 마이클은 한때 가족이랑 [[트럼프 타워]]에서 거주를 하기도 하였다. 2차 성추행 논란 당시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항상 [[https://www.youtube.com/watch?v=f6S4K2xbh1M|"나는 마이클을 성추행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언론들에게 돈벌이용으로 사용된다."]]라는 입장을 표방했다. 또한 "의외로 마이클은 엄청 똑똑하다. 그는 엄청난 사업가이다." 등 인터뷰에서 항상 칭찬만 하였다. 마이클이 죽고 트럼프가 정계진출 이후에도 항상 같은 주장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yXx57VS3U|#]] * 2019년 11월 [[프레디 머큐리]]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영화)|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든 할리우드 제작자 그레이엄 킹이 마이클 잭슨의 음악 세계를 그린 전기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킹은 오스카 후보 지명 시나리오 작가인 존 로건에게 의뢰해 마이클 잭슨 일대기를 그리는 시나리오 집필을 맡겼다. 제작 스튜디오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킹은 잭슨의 초상권을 보유한 마이클 잭슨 재단과의 영화 제작에 관련된 권리를 따내는 계약을 최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 대체적으로 [[진보주의|진보]]적인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로널드 레이건|레이건]] 등 [[보수주의|보수]] 정치인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상술한 도널드 트럼프는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까지 '''[[민주당(미국)|민주당]]''' 소속이었고,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성향도 진보적이었다. 그가 [[공화당(미국)|공화당]] 사람이 된 것은 마이클 잭슨이 죽은 이후의 일이다.] '연예인 중의 연예인'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인지라 어마어마한 인맥을 가졌는데, 그것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아주 좋았던 듯하다.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사적으로 친했다고. * 영화 [[올리버!(영화)|올리버!]]를 무척 좋아해서, 주연이었던 마크 레스터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으며(두 사람은 동갑이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의 자녀들을 대리모로 얻을때 마크 레스터가 정자 제공을 해줬다고 한다. *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서 23명이 사망하고 5000명이 쓰러졌다는 루머가 돌아다니는데 '''전부 사실이 아니다'''. 일단 그렇게 주장하는 매체는 대부분 2017년등으로 최신이고 92년도 당시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92년도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 당시에 사망한 사람이 1명이었고 그걸로도 나라가 난리가 났었는데 23명이면 오죽할까. 아마도 훨씬 더 크게 난리나서 당장 투어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받거나 안전상의 문제로 비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정도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마이클 잭슨 측에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내 유튜브 상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라는 잘못된 정보가 많이 퍼져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위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마이클 잭슨을 비난하는 목적보다는 그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는 걸 강조하는 용도로 쓰기는 하지만 의도가 어떻든 이는 분명한 허위사실이다.] * 프랑스인 Jonathan Akamba(@akamztwenty20)는 마이클 잭슨의 춤을 추며 [[마이크 타이슨]]의 복싱을 구사한다. 공교롭게도 이름에 교집합이 있다: 마이크 타이잭슨 등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